보이스트롯 황민우 동생 아버지 직업 학교 부모,강대성 영광 가수 진욱 나이

카테고리 없음 2022. 12. 30. 02:42

형제애 통했다... ‘리틀싸이’ 황민우, 동생 응원 힘입어 본선 직행
- 2022. 12. 29.

리틀 싸이’로 대중에 이름을 알린 ‘샛별부’ 황민우(18) 군은 의연했다. 29일 밤 10시부터 방송된 ‘미스터트롯’2에서 이번 ‘샛별부’는 트롯신에 새롭게 발을 디딘 ‘신인’을 선보이는 신설부서랍니다.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를 택한 그는 미스터트롯2를 함께 건너고 싶은 마음을 담아 선곡했다고 했다. 대기실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있는 동생 황민호는 작은 손을 꼭 잡고 “제발”이라며 내내 글썽이는 모습으로 기도로 형을 응원했다. 하트 14개. 당장 본선 진출은 아니고 추가 합격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장부’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동생 황민호에게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었답니다.

황민우는 지난 2012년 중반 싸이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서 리틀싸이라는 별명을 얻은 스타. 8살때부터 ‘광주 회장님’으로 최연소 행사제왕으로 이름을 날렸다. ‘전국노래자랑’은 물론 2011년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해 ‘댄스신동’이란 타이틀을 얻은 주인공이랍니다.


각종 방송을 통해 알려졌다 시피 다문화 가정에서 자랐다. 베트남 출신 어머니와 현재 예순이 넘으신 아버지와 트로트에 인생을 맡기며 흥과 한을 풀어내고 있다. 어린 시절 한국말을 잘 못해 댄스를 통해 성격이 밝아졌고 여덟살 차이 늦둥이 동생 황민호군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말을 늦게 떼서 부모의 걱정을 한몸에 받기도 했지만 형과 함께 트로트를 배우며 누구보다 ‘찐형제’의 우애로 대기실을 밝혔답니다.

장윤정은 “샛별부 중에 제일 여유로운 모습”이라면서 “민우군이 퍼포먼스가 너무 강해서 노래가 못따라가는 모습이 보인다”고 아쉬워했다. 장윤정은 “댄스브레이크 한 뒤에 흔들리면 안누르려다 쫙 풀어내는 모습에 누르게 됐다”며 “단점을 가리고 장점을 보여주는 선곡을 했다”고 말했다. 이홍기 마스터는 “경쟁이기 때문에 조금 노래를 보완하면 좋겠다”면서 “무대 원숙미는 대단하지만 풋풋한 점이 더욱 보이면 좋겠다”고 말했답니다.

샛별부의 문을 연 영광(23)은 이혜리의 ‘아이좋아라’를 선택해 올하트를 받았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시원시원한 가창력이 돋보였다. 분홍색 슈트를 입고 등장해 ‘트롯계 츄잉 캔디’라는 애칭도 얻었다. 알고보니 혼수상태는 “트로트의 밀당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현해 놀랐다”며 “트롯계 예비 스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붐은 “외모만 봤을때는 무조건 퍼포먼스처럼 보였는데 생각보다 못해서 너무 놀랐다”면서 웃음을 자아냈다가 “그 부분을 노래로 가득 채웠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트롯 신동’ 출신인 진욱. 9살 때 남인수 가요제 상을 받으며 가요계에 얼굴을 알렸다. 트로트 가수 진욱은 마스터 장민호가 올해 내놓은 ‘회초리’를 선곡했다. 샛트롯신동으로 활동하다가 20대에 어머니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아버지는 간암 수술을 하시면서 경제활동을 해야 했다고. 공사장 등에서 일하며 20대를 보내고 30대에선 진짜 트로트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그는 큰 절을 하며 마스터에게 인사를 했답니다.

마지막에 누른 이현우는 “집중하다 듣다보니 하트를 누를 시간을 놓쳤다. 미스터트롯에서 보고 싶었던 무대”라면서 “테크닉이 많이 들어가야 되는 노래인데 자신의 곡처럼 잘 불렀다”고 말했다. 트롯신동이지만 무명이 길어지면서 음악에 대한 고민이 길어지던 시기에 장윤정 마스터를 방송에서 만난 적 있어 고민도 많이 들어주고처한 상황에 대해 조언도 많이 했습니다.

장윤정은 “데뷔가 오래됐지만 노래를 안했던 시간에 악기에 먼지가 많이 쌓여있는 느낌이다”라고 “나오겠다는 얘기에 이 상태면 쉽지 않겠다 했는데 악기 먼지 닦고 끈을 잘 조인거 같아서 좋았다”고 말했다. 김희재 마스터는 “이번에 나와주셔서 다행”이라며 “그 시즌에 나왔으면 제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면서 웃었답니다.

트로트 가수 5년차인 임찬은 나훈아의 ‘가라지’를 선택해 비단결 목소리로 시청자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장윤정은 “감정선을 제대로 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샛별부 7명 중 추가 합격자가 발표되는 순간. 유일하게 황민우 군의 이름이 불렸다. 오열하던 동생 앞에서 형이 환하게 웃었다. 형제는 마지막까지 환하게 웃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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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남편 윤희중 가수 결혼 나이 고향 이혼 재혼

카테고리 없음 2022. 12. 27. 22:28

이선희, 재혼 14년만 이혼→6년만 컴백..'작은거인' 3막 응원
- 2020. 5. 27

가수 이선희가 재혼 14년 만에 이혼했답니다.

이선희 측은 "올해 초 협의 이혼했다"고 밝혔다. 이선희는 1992년 음반 제작자 겸 자신의 매니저였던 윤희중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 그러나 결혼 6년 만에 파경을 맞았고 윤희중은 세상을 떠났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이선희는 2006년 9세 연상의 재미교포 건축사업가 정 모씨와 재혼했다. 이선희는 MBC '무릎팍 도사'에서 "딸의 유학을 준비하다 남편을 만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재혼 14년 만에 결국 두 사람은 이혼을 결정했다. 이혼사유는 성격 차이로 알려졌다.


두 번째 아픔을 뒤로 하고 이선희는 본업인 가수로 돌아온다. 현재 정규 16집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선희가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에 참여해 퀄리티를 높였다. 이선희의 신보는 2014년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인 정규 15집 이후 6년 여만의 일이랍니다.

사실 이선희는 워낙 자기관리가 철저한데다 TV 매체 등의 노출이 적어 사생활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재혼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그만큼 대중은 그의 이혼소식보다도 가수 컴백 소식에 더욱 반응을 보이며 응원을 보냈다.

이선희는 '가요계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며 대한민국 가요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 'J에게' '아름다운 강산' '나 항상 그대를' '아! 옛날이여' '인연'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어마어마한 가창력은 언제나 듣는 이들을 놀라게 했답니다.

오랜만에 가수로 복귀하는 '작은거인'의 귀환을 팬들은 한 목소리로 응원하고 있답니다.

- 프로필 이력 경력 누구

출생 나이
1964년 12월 14일(58세)

고향 출생지
충청남도 보령군 주산면 황율리
(
소속사 후크 엔터테인먼트
레이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장르 팝 발라드

배우자 윤희중
종교 불교(태고종)

1980년대

그녀는 대학 시절이던 1984년 제5회 《강변가요제》에서 같은 학과 선배 임성균과 "4막 5장"이란 팀으로 출전하여 《J에게》를 불렀다. 애초에 상명여자고등학교 2학년 때 노래가 하고 싶어 작곡가 장욱조의 음악 사무실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어떤 무명 작곡가(이세건)가 말하기를 "아직도 내가 만든 노래를 아무도 아니 불러 준다."며 악보 뭉치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답니다.

그 악보 뭉치를 주우면서 차라리 마음대로 불러도 되는지 물어 보아 결국 허락을 받았으며, 그 더미 속에 있던 노래가 바로 〈J에게〉였다. 3년이 지난 이후 1984년 이 노래로 참가를 하여 MBC 강변가요제 대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으며 데뷔하였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바지만 고수하는 옷차림의 보이쉬한 매력으로 ‘언니 부대’가 만들어졌으며, 특히 동그란 안경과 커트 머리가 여학생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며 소위 '이선희 신드롬'을 일으켰답니다.


아직 정규 앨범 한 장 없이 오직 〈J에게〉란 곡 하나만으로도 11월 25일부터 KBS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를 하여 골든컵을 차지하였고, 1984년 KBS 방송 가요대상 신인상, 1984 MBC 10대가수가요제 최고 인기가요상, 신인상, 10대 가수상으로 최초 3관왕에 오르는 등 데뷔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지난 1985년 첫 음반 《아! 옛날이여》가 발매되었으며,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J에게〉와 록 스타일이 가미된 〈아! 옛날이여〉, 〈갈등〉, 〈소녀의 기도〉등의 곡도 히트하여 KBS 가요 톱텐에 자신의 노래 7곡을 진입시키는 등 큰인기를 끌었다. 〈아! 옛날이여〉로 1985년 가요부문 통합 1위를 차지하였답니다.

1985년 11월 2집 《갈바람》이 발매되면서 〈갈바람〉, 〈괜찮아〉, 〈연인의 눈물〉, 〈가난한 연인을 위하여〉,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 등의 곡이 인기를 모았다. TV 가이드와 뮤직 박스 1위로 선정되었으며, 일간스포츠 골든 디스크상, KBS 방송 가요대상, MBC 10대 가수상 등을 수상했다.

1986년 3집 앨범 《알고 싶어요》가 발매되었다. 1987년 대표곡 〈알고 싶어요〉가 KBS 《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를 하며 골든컵을 두 번째로 차지하고 한 달 방송 횟수 107회, MBC 라디오 음악차트에서 15주 1위 기록을 만들어 냈다. 그 외 〈영〉, 〈어둠은 걷히고〉, 〈청아한 사랑〉 등이 히트했다. 또한 학생가장돕기를 위한 전국 투어를 계속 진행했답니다.

1988년 4집 《사랑이 지는 이자리》에서 〈나 항상 그대를〉로 KBS 《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를 해 3번째 골든컵을 수상했다. 또한 70년대 신중현과 뮤직파워(26인조 악단)의 〈아름다운 강산〉을 리메이크해 폭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사랑이 지는 이 자리〉, 〈안녕〉, 〈길을 떠나자〉 등도 히트하였다. 만화 주제가 〈달려라 하니〉를 부르기도 하였다.

1989년 5집 《한바탕 웃음으로》에서는 〈나의 거리〉가 KBS 《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로 4번째 골든컵을 수상하였으며, 〈한바탕 웃음으로〉는 1990년에 3주연속 1위를 차지하며 1989년과 1990년 한 앨범으로 2년 연속 골든디스크상을 차지했다. 그 외 〈겨울애상〉, 〈불꽃처럼〉, 〈오월의 햇살〉 등의 노래가 히트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90년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을 발매하며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그리운 나라〉, 〈왜 나만〉 등이 히트했다. 5집《한바탕 웃음으로》의 수록곡 〈한바탕 웃음으로〉가 골든디스크상 5회 연속 수상,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으로는 KBS 방송가요대상 6년 연속 수상, MBC 10대 가수상 6년 연속 수상 등을 했다. 전성기 시절 이선희는 발매되는 앨범마다 대표곡 뿐 아니라 앨범의 모든 노래가 히트하는 쾌거를 안았답니다.

1990년대

1991년 서울시의회 의원 선거에 당선되어 제3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음악적으로는 1990년대로 접어 들면서 고비가 왔다. 7집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은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대가 떠나신 후에〉 등이 인기를 끌긴 했지만 이전만큼은 아니었고 상업적으로도 제일 저조한 성적을 얻었다. 1992년 변화된 가요계 상황에 대응하여 국악과 가요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룬 8집 《조각배》를 발표하였다. 타이틀곡 〈조각배〉와 〈초원〉, 〈작은 연가〉, 〈성주풀이〉, 〈한네의 이별〉 등을 이선희만의 느낌으로 소화한 실험적인 앨범으로서 색다른 변화에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답니다.

1994년 9집 《한송이 국화》는 록의 느낌을 가미하며, 또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송이 국화〉를 시작으로 〈Blue Cafe〉, 〈기분이 좋아〉, 〈비오는 거리에 서서〉, 〈아쉬움〉 등이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이후 한때 1995년 12월 6일부터 1996년 2월 17일까지 새정치국민회의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 직위에 보임되어 잠시 활약하였으며, 국민회의 탈당 직후 1996년 3월 21일부터 1996년 6월 1일까지 통합민주당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 직위에 보임되어 활약하였고 통합민주당 탈당 직후 1996년 10월 발표한 10집 《First Love》(대표곡 〈라일락이 질 때〉)는 모든 노래의 작사와 작곡에 직접 참여하였답니다.

〈회색 도시〉는 락의 느낌과 〈성안의 아이〉는 몽환적인 느낌으로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아카라카치〉는 삶에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담고 응원 구호를 접목시키며 가창력까지 돋보이게 해 응원가로도 쓰인다. 이 앨범 이후로 이선희는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도 보여 주기 시작했답니다.

1998년 11집 《Dream Of Ruby》(대표곡 〈낯선 바닷가에서〉) 뮤직 비디오 촬영 중 부상을 당하기도 했지만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이 만든 〈너에게 가면〉으로 엄청난 고음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2000년대

2000년 5월 31일부터 2000년 10월 31일까지 새천년민주당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 직위를 잠시 지낸 그녀는 새천년민주당 탈당을 한 이듬해 2001년 3월, 유영석, 박진영, 김종서 등 젊은 세대들의 대표 아티스트들이 도운 12집 《My Life + Best》에서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며 MBC 10대가수상을 다시 한번 수상했습니다.

〈이별소곡〉은 조용한 느낌, 〈이 노래를 빌려서〉는 슬픈 감정, 〈살아가다 보면〉은 삶에 격려 등과 희망을 주며, 인기를 끌었다. 2002년에는 영화 《가문의 영광》에 1988년에 발매했었던 〈나항상 그대를〉이 삽입되어 후세대 사람들에게도 각인되었답니다.

이후 앨범 활동은 4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그 사이 이승기라는 가수를 발굴해냈다. 직접 가수 제의를 하고,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 가수로 데뷔시키고 행사를 같이 다니고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대하기도 했다. 이승기는 가수는 물론이고 예능인으로도 《1박 2일》과 《강심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며, 배우로서 《소문난 칠공주》, 《찬란한 유산》,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등에 출연하였답니다.

2005년 이선희가 모두 작사와 작곡한 13집 《사춘기》를 발매하였다. 대표곡 〈인연〉은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왕의 남자》의 OST로 삽입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장미〉와〈왜?〉 등은 이선희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내어 전문가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다.

2006년 돌연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포기하고 2009년에 귀국해 14집 《사랑아...》를 발매하며, 여러 방송과 행사에 출연했다. 특히 KBS2의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였다. 계속적인 음반 발매와 콘서트를 통한 활동으로 2010년 SBS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OST 〈여우비〉와 〈내가 사랑할 사람〉, 《대물》의 OST 〈떠나지마〉를 부르기도 하였답니다.

2010년대

2011년 2월 3일에 세계적인 가수들만 설 수 있다는 뉴욕 카네기홀 중에서도 가장 큰 메인공연장인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움'에서 대한민국 대중가수로는 3번째로 단독 공연을 가졌다. 2800여 석에 이르는 좌석이 모두 매진이라는 큰 기록을 세우며 한인으로서는 최다 관객 동원을 기록하였다. 2011년 9월부터 방송된 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시즌 2의 멘토로 출연하였고, 멘티 구자명이 우승하였습니다.

2014년 3월 25일 30주년 기념곡으로 〈그중에 그대를 만나〉라는 곡을 발표했다.

2016년에는 SBS "판타스틱 듀오"의 첫방송에 출연하여 5주연속 우승을 차지했답니다.

최고의 아이돌 가수들과 경쟁하는 모습에 "역시 이선희"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2016년 9월부터 2017년 3월까지 "The Great Concert LEESUNHEE" 전국 13개도시 23회 공연을 전회 매진으로 진행하였고 2017년 5월 미국 LA와 9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해외투어 공연을 열었답니다.

2018년 4월 1일 평양 대동강지구 동평양대극장에서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 《봄이 온다》 무대에 올라 〈J에게〉, 〈알고 싶어요〉, 〈아름다운 강산〉을 불렀다. 3일에는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 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북한의 김옥주와 함께한 <J에게>, 그리고 <아름다운 강산>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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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범수 고향 나이 키 프로필 집 아파트 결혼

카테고리 없음 2022. 12. 22. 14:12

- 가수 김범수 프로필은?

출생 1979년 1월 26일(43세)

고향 출생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직업 가수
장르 발라드

활동 시기 년도
1999년 ~ 현재
종교 개신교 (예장통합)

레이블 스톤뮤직 엔터테인먼트
소속사 영 엔터테인먼트

학력
서울양동초등학교 (1991년) (졸업)
양강중학교 (1994년) (졸업)
강서공업고등학교 (1997년) (졸업)
숭실대학교 글로벌미래교육원 음악계열 실용음악 (97학번) (중퇴)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 (졸업)
중부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중부대학교 인문산업대학원 연극영화학과 (졸업)

김범수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서울 양천구로 이사하여 성장기를 보냈다. 박선주로부터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고, 1999년 4월 1집 앨범 《A Promise》로 데뷔하였답니다.


한동안 얼굴 없는 가수로서 TV 출연 등을 아예 하지 않은 채 활동하였다. 2000년에는 2집 앨범의 타이틀 곡인 〈하루〉가 히트하였고, 이후 〈Hello Good-bye Hello〉라는 제목으로 영어판을 발매하여 빌보드 판매 차트 51위에 진입하여 글로벌 가수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도 일본에서 두 장의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2002년, 김범수의 3집 앨범의 타이틀 곡인 〈보고싶다〉가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 OST로 사용되면서 인기를 얻었다. 이후 2003년경부터 TV 등의 매체에 출연하기 시작하고, 발매 앨범에도 본격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노출시키기 시작하였답니다.

지난 2006년 4월 3일 현역으로 입대하여 운전병 및 연예 병사로 활동한 후 2008년 3월 28일에 제대했다. 제대 후 6집 앨범을 발매하면서 가수 활동을 재개하였다. 2011년 3월에는, MBC 《우리들의 일밤》 - 나는 가수다에 참여하여 박정현과 함께 최장 생존 가수로 명예졸업을 하였고, 이 무렵부터 예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인지도를 강화했답니다.

김범수 "12년만 자가 마련
- 2022. 12. 22

가수 김범수가 오랜만에 예능에서 입담을 펼쳤다.

21일 방송된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 (이하 '옥문아들')에서는 갓 김범수가 출연했답니다.

김범수는 "이제는 완연하게 얼굴로 승부를 보고 이제 목소리로 다가가고 싶은 김범수다"라고 소개했다. 이에 김종국은 "완전히 예능 얼굴인데 왜 그동안 잘 안 나왔냐"라 했고 김범수는 "예능은 사실 제게 스트레스가 된다. 에너지가 많이 소진돼서 비축을 많이 해서 쌓아놓고 나와야 한다. 오늘은 가득이다"라 의욕을 보였다. 이어 "민경훈 자리가 욕심 난다. 중앙은 부담스러운데 민경훈 자리는 덜 부담스럽지만 없어선 안된다"라고 해 민경훈을 긴장케 했습니다.


김종국과 같은 소속사 출신인 김범수, 두 사람은 '얼굴 없는 가수' 출신이라 해 웃음을 자아냈다. 김종국은 "김범수가 오디션을 본다 했는데 안 와서 사장님이 기다렸다더라. 누가 봐도 가수가 아닐 거 같은 사람이 있어서 '쟤는 아니겠지' 했는데 그 사람이 김범수였다"라 했고 김범수는 "그때 사장님이 '음식 배달을 왔으면 놓고 가지 왜 안가나' 했다. 난 그때 한껏 꾸미고 간 거다"라며 억울해 했답니다.

요즘 김종국을 피해 다닌다는 김범수는 "저도 헬스를 15년 했는데 전에 김종국을 따라갔다가 일주일을 못 걸었다"라 전했다. 이에 김종국은 양보다 질이라 설파했지만 김범수는 "나도 내 방식이 있는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다"라 정리했다. 복싱장 관장도 김종국을 피해 다니라 했다고.

세기의 결혼식엔 항상 김범수가 있다고. 현빈 손예진 부부부터 이민정 이병헌 부부, 이보영 지성 부부의 결혼식에도 김범수가 축가를 불렀다. 김종국은 "누가 병허이 형인지 몰랐겠는데?"라 농담했고 김범수는 "많이들 헷갈려 하시더라"라며 너스레를 떨었답니다.

김범수는 "저는 마음에 우러나와야만 축가를 부른다. 유명인이어서 한 게 아니다. 현빈씨 결혼식엔 그런 마음이 들었다. 가수들은 알텐데 현빈이 출연한 드라마 OST 친분이 있어서 내 배우 같은 친근감이 있다"라 했다. '시크릿가든'부터 '하이드 지킬 나'까지 현빈과 인연이 있었다.

김범수는 "손예진 씨도 그렇고 이게 현실인가? 싶었다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하객들도 웬만한 시상식 느낌이었는데 시상식은 떨리기라도 하지 결혼식 축가는 비현실적이었다. '이게 영화인가?' 싶었다. 저 멀리서 감독님이 컷을 외칠 것 같았다"라 회상했답니다.

확실히 답례품도 사이즈가 달랐다고. 광고를 많이 찍는 현빈 손예진 부부이니만큼 광고 속 제품들이 답례품으로 제공됐다. 김범수는 "심지어 답례품도 하이엔드 라인이어서 다 모아놓으니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다. 거의 개런티를 받은 거나 다름없이 많이 받았다"라 밝혔습니다.

또 이민정 이병헌 부부 결혼식 후기에 대해서는 "그때는 집에 초대를 받았다. 박정현과 같이 축가를 했는데 멤버들을 모아서 화려하게 하우스 파티를 했다. 그게 참 기억에 남는다"라고 전했다.

또 3년 만에 콘서트를 연다는 김범수는 "그동안 무대에 못서는 공허함이 있었는데 지금 너무 실감이 안되고 기대된다"라면서 콘서트 이름이 '명품 백'이라고 해 기대를 높였다. '실제로 명품 백을 선물하는 건 어떻냐'라는 질문에 "한 적이 있다. 추첨으로 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다"라고 했답니다.

김범수는 '분장은 안하냐'고 묻자 "한 번 해봤는데 그렇게 좋아하지 않더라"라 답했다. 김종국은 "저도 했는데 반응이 경악이었다. SES 바다 분장을 했는데 대퇴 사두가 갈라져 있었다"고 웃었다.

또 '지우고 싶은 무대'는 KBS '열린음악회'였다. 김범수는 "국국의날 60주년 행사였다. 제가 이등병이었는데 처음으로 사복을 허락해서 생방송 무대에 섰다. 바로 앞 열줄이 장성들이었다. 머리가 하얘지더라. 박자를 놓치면 그 부분을 안하면 되는데 제 성격은 그걸 해야 하는 거다. 옥타브까지 실수했다"라며 영상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답니다.

김범수는 '목관리'에 대해 "가수 후배들이 슬럼프가 오면 저한테 조언을 많이 구하는데 목에 안좋은 습관을 피하라고 한다"며 빨대 발성법을 소개했다.

또 보컬의 레전드 '김범수 나얼 박효신 이수'를 통칭해 '김나박이' 별칭에 대해서는 겸손해하며 "그나마 그중 제가 제일 외향형이다. 저 덕분에 명백이 이어지는 거다. 저도 수줍음이 많은데 저도 한 번 보고 싶을 정도다"라면서 네 사람 조합의 무대에 "저는 준비가 되어 있다. 이분들이 용기를 낸다면 같이 하고 싶다"라 밝혔습니다.

서장훈 노홍철처럼 깔끔하다는 김범수는 "독립 12년 만에 자가를 마련했다. 원래 내 집 소유 욕구가 없었다. 살아보고 싶은 집을 전세로 이사다녔는데 어느순간 너무 귀찮더라. 집 인테리어 하는 걸 좋아하는데 전셋집은 마음대로 꾸미지 못하니까 이번에 자가로 들어가면서 제 스타일로 꾸몄다. 컨셉은 호텔 스위트룸이다. 매일 호캉스 하는 기분이다"라며 흐뭇해 했다.

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던 것에서는 "제주살이를 하면서 팬들과 소통을 하려고 만들었다. 취미생활을 올리니 조회수가 정말 적었다"라 했고 김종국은 "저도 노래하는 영상을 올리면 운동영상보다 조회수가 현저히 떨어진다"라며 공감했답니다.

김범수 "1년간 제주살이, 노래 빼고 하고 싶은 거 다 했다
- 2022. 12. 11

가수 김범수가 2년간 안식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밝혔다.

11일 방송된 SBS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에 가수 김범수가 함께했다.

최근 안식년을 갖고 제주살이를 했다는 김범수는 "벌써 2년 정도 됐다. 몸도 마음도 휴식하자 싶어서 다 놓고 제주도에 1년 정도 내려갔었다"라고 설명했답니다.


무계획으로 제주살이를 했다고. 김범수는 "노래 빼고 다 한 거 같다. 노래를 좀 쉬고 싶어서 목을 거의 안 썼다"라고 밝혔다.

이어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노래로 어필해본 적 있냐고 물었다. 그러나 김범수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며 "만나는 사람에게 이벤트를 해준 적 있지만 시작하는 단계에서 그런 적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건 마치 전쟁 때 핵무기를 사용하는 느낌? 그러면 반칙이라 생각한다"라고 너스레 떨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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